양속 파괴 <기생충>

 

    영화 감상의 내 수준은 지각 채택자(late adopter)”. 관객이 몇 백만 몰렸다하면 그제야 한번 봐야지!” 생심하는 스타일이다.

    모르긴 해도 영화의 미국 아카데미상은 문학으로 치면 노벨상 정도가 아닐까. 그런 짐작을 갖고 있던 참에 우리 영화가 쾌거를 이뤘다니 그럼 봐야지! 마음을 다잡았다. 엊그제 트럼프 대통령이 <기생충>의 수상을 두고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딴죽을 걸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주말 하루 1회 공원 소극장에 겨우 몇 사람 지각생이 내 좌우에 앉았다. 과연 끝물은 끝물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적 약점과 딱 맞아 떨어지는 줄거리 진행 하나가 나를 빨려들게 만들었다. 부자집 붙박이 가정부가 지독한 복숭아 알레르기 체질임을 알고 그걸 악용해서 음모자들이 그녀를 좇아내는 장면, 나로 말하자면 그 과일을 먹지 않으면 그만인데도, 그걸 남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던 난감한 과거사가 기억나서 새삼 모골이 송연했다.

    내가 존경했던 선비가 세상을 떠난 직후 추모 글을 적었더니 유족이 치사한다고 집에 초대해 주었다. 8월 초순이었다. ‘인간문화재제도가 생겨나게 해준 문화재 전문 유명 언론인이기도 해서 그가 남긴 처소도 구경할 겸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예의범절이 깍듯했던 노부인이었다. 모시 치마저고리를 받쳐 입고선 손님 대접으로 모시수건을 받힌 백자쟁반 위에 희불그레한 과육의 수밀도를 담아 내왔다. 다른 과일은 그 옆에 끼일 자리가 없었다. 도화색이 압도적인 그런 그림인대 그걸 사양해야 하는 내 처지가 어떠했겠는가. 또 내 알레르기 체질에 부인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그런 체질은 부인의 반생에서 한 번도 만나지도 들은 바도 없었음이었다. 이 영화는 그 부인이 진즉 보았어야 했다는 생각만 머리를 스쳤다.

    그건 그렇고 영화를 본 내 감상은 한마디로 언성시럽다였다. 대구 연고가 깊었던 소설가 김원일이 자주 소설에 등장 시키는 지방 말인데, 유명 작가의 어법 덕분에 타지 사람도 어감을 알만하다고 한다. 내 간단한 풀이는 어이가 없다.

    마침 불쾌기조를 말해줄 영화평을 만났다(조희문, “이념 선동'에 부역하는 한국 영화,”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8362, 2020.2.16). 영화의 해독력이 태부족인 처지의 나를 대신 말해준다 싶어 그 지적을 인용해본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기생충은 부자에게 온가족이 기생충처럼 들러붙다가 그 일이 여의치 않게 되자 아예 떼죽음 판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연출을 조직한 감독, 그런 영화에 투자한 영화사는 금수저 생활을 하고 있는 부자들이다.... 부자가 계급 갈등을 선동하며 다른 부자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이 정의로우며, 영화의 예술 수준을 높이는 것인가?

영화를 선전 수단으로 징발한 것은 소련 공산당이 원조다....공산 혁명기의 소련 영화는 부자가 악마보다 더 나쁘다고 선동한다. 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는다. 가난하다고, 적게 가졌다고 무조건 옳고 착하다는 생각의 바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문다. 가난하기 때문에 무한히 착하기 만한 한 노동자농민이, 그들보다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부자는 타도하고 처단해야 할 인민의 적이며 원수라고 단정할 뿐이다.

다수의 대중을 선동하고 적개심에 불타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처럼 보이도록 조작한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부자는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용서할 수 없는 대상으로 둔갑한다. 인민 대중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으며 호의호식하는 극악무도한 원수들을 처단하는데 무슨 이유와 절차가 필요한가?

 

사족이지만 내 관점도

    영화 평론가의 비판을 길게 인용한 터에 이제 한 두 마디 내 소감을 덧붙일 차례다. 범죄 인물은 부부와 아들딸, 아버지는 기택, 아들은 기우, 딸은 기정이다.

    삼부자녀의 이름은 한민족의 이름 작법을 완전 무시한 북한 부자 3대 왕조와 닮았다. 정일은 일성의 (), 정은은 정일의 ()자를 따왔다. 우리 전통 예법인 피휘(避諱)와 항렬 작명법의 완전 무시다. 피휘는 임금 등 높은 이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삼가는 마음으로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를 대신 사용했음이고, 이 취지에서 가정마다 부모 성명 답하기를 소생들에게 가르칠 적에 무슨 성씨에 무슨 자, 무슨 자라 말하게 교육시켰다. 그리고 항렬법이 있어 부모 이름 글자를 따오는 법이 아니었다.

    <기생충>의 도둑 삼부자녀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똑같이 자다. 애비와 자식의 이름자가 한 줄이라 헷갈리기 십상이다. 방문객이 누군가를 부르면 세 사람 모두가 돌아보지 싶다. 영화 제작에다 생활 법도를 제대로 지키라는 주문은 말이 안 되는 줄 알지만, 굳이 말하려다 보니 패륜이, ‘개판이 따로 없었다.

 

계획성의 체화는 현대 한국의 성취였던 것

    살인극을 예감하는 순간에 이르러 애비가 새끼에게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애들아)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무언지 아니? 무계획이야. 왜냐, 계획대로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야.... 우리는 뭐가 터져도 다 상관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상관없어....”

    빈둥거리는 자식을 두고 부모는 너는 예산도 계획도 없냐?”고 나무란다. 금전으로 표현한 계획이 예산이다. 현대 한국인의 각계 삶에서 계획성의 도입확산이 이 나라 압축성장의 중요 동력이었다는 것이 사계의 유력설이다.

    우리 전래 삶에서 내일을 이야기하면 귀신도 웃는다.” 했다. 그만큼 허황되다는 말이었다. 한자어로 작일금일내일은 우리의 일상 시간대인데, 이에 상응하는 우리말로 어제오늘이 있지만 내일에 해당하는 낱말은 없다. 내일이, 미래가 한민족의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해당 단어가 없었다고 언어학자는 풀이한다.

    계획은 내일에, 장차에 이루고자 하는 꿈을 위해 오늘 투입하는 시도이자 노력이다. 국가경제를 진작시키려는 발상법으로 나라가 먼저 계획을 도입했다.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66)이 시행되고 바로 얼마 뒤 성과가 가시화되었다. 1960년대 중반 울산 공업단지의 중화학 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자 번영의 연기라며 전 국민이 감격했다.

    여기에 자극받아 기업은 물론이고 세상변화에 담쌓고 있었던 대학도 이 장기 계획 수립 대열에 참여했다. 이 이상이었다. 그즈음 여성 월간지가 가려 뽑은 주부들의 생활수기 대상은 내 집 마련 3개년 계획이 제목이었다.

    이 효과로 요즘은 사람마다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계획성은 우리 일상의 규법이자 바람직한 생활방식으로 엄연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데 <기생충>은 이걸 완전히 무화(無化)시키는 말짓거리를 늘어놓았다.

 

영화는 나라 흥망에 관심이 없을까

    비극은 관객에게 마음 정화(淨化) 곧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예술사에서 읽었다. 그리스 비극에서 셰익스피어 비극에 이르기까지 잘난 이들이 겪는 처참한 비극, 이를테면 권력의 화신 왕들마저도 저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나?!”의 간접 체험을 통해 괴로운 인생살이 길의 보통사람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설명이었다.

   살인극 <기생충>이 안겨준 카타르시스는 무엇인가. 경북 안동 산골의 한 반가 대문에 붙은 나라 흥망은 이름 없는 백성도 책임(國家興亡 匹夫有責)”이란 옛 경구는 그냥 흘려들어도 좋단 말인가.

 

 김형국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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