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부디 환희의 송가가

 

    “한 사람 천재가 만 사람을 먹여 살린다.” 혁신적 기업가의 공덕을 찬양할 때 마다 듣는 금언이다.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드물게 문화예술 쪽도 그런 경우가 있다. 새해 2020년으로 탄생 250년을 맞는 베토벤이 그런 천재였다.

    베토벤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무수한 연주가들이 소속된 세계 도처 악단의 연주에서 베토벤 악곡이 압도적이다. 세계정상급 교향악단으로 미국 쪽은 뉴욕 필하모닉, 유럽 쪽은 비엔나 필하모니커를 꼽는다면 둘 다 같은 해 1842년에 발족했다. 두 악단의 창단 공연 곡목의 절반이 베토벤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5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이후, 그가 없었다면 무수한 음악가들이 무슨 곡목을 연주해서 먹고 살고 보람을 느꼈을까 싶을 정도로 베토벤이었다.

    오늘의 세계에서 악기 연주에 매달린 사람은 약 5천만 명을 헤아린다(The Economist, 2019.12.21.-2020.1, 3). 기성 음악가에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을 포함일 것인데, 그들에게 딸린 가족들까지 따지면 최소 2억 명 이상이 그 생업에 매달려있다는 말이다. 음악 공부의 주종 악기는 피아노인 것. 30여곡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로 정평난지 오래다. 이 정도이면 지난 천년의 역사적 인물 천 사람을 가려 뽑은 <1천년, 1천인>의 미국 쪽 1999년 탐색에서 구텐베르크가 첫째였고, 음악가로 단연 베토벤이 열 번째에 뽑힌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했다.

 

문명사 흐름에 일조했다

    베토벤의 예술을 말할 때마다 불멸또는 영원이란 수식어가 어김없이 따른다. 고전음악 애호가 없는 사람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근대화문명, 그리고 현대사의 중요 고비때마다 베토벤이 등장해왔음은 새삼 기억할 만하다.

    18세기 말에 등장한 근대화문명은 산업화로 살만한 시민계층이 등장하면서 발화했다. 이들이 왕후장상의 전유물이던 고급문화도 즐기려들자 여기에 부응하여 실내관현악곡 대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큰 음향의 교향곡을 집중 작곡했던 이가 바로 베토벤이었다. 이리하여 문화의 대중화가 촉발되었음도 근대화전개의 약사(略史).

    최근세사인 제2차세계대전은 라디오가 무기의 하나로 행세했던 전쟁이기도 했다. 그때 연합국이 나치 압제의 유럽사람에게 전황을 알리고 또한 레지스탕스에게 작전 암호를 전할 때 방송은 먼저 운명이라고 알려진 5번 교향곡의 도입부로 시작했다. “따다다 단-” 시그널은 전화가 나오기 전의 원격통신이던 전보에서 국제 모르스 부호의 영어 브이(V)’자였다. 그러니까 Victory(승리)를 확신한다는 전의(戰意)의 다짐이었다.

    큰 인물의 장례식엔 어김없이 3번 영웅교향곡 2악장을 연주하고, 유엔 등 큰 국제기념행사에 단골로 9번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는데 그 4악장 주제가 EU 유럽연합의 국가이다. 1989년 크리스마스 때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라는 희대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해서 명지휘자 번스타인이 그간 독일 분할통치 참여 4개국과 당사국의 대표적 5대 교향악단(뉴욕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파리오케스트라, 키로브극장, 바이에른방송) 악단원 참여로 9번을 연주했고, 세계 20개국으로생중계되었다.

    이렇게 거창한 경우에 못지않게 개별 사람 사이도 마음 문 열기에 베토벤이 있었다. 1950년대 말 어렵사리 독일로 학부 유학을 가서 거기 의대 교수까지 올랐던 한 피부과 의사도 베토벤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학부 기숙사는 2인실 원칙에서 룸메이트는 역시 독일인이었다. 그런데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무척이나 심했던지 도무지 상종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나날이었다어느 하루 외출에서 돌아오니 그 친구가 유성기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듣고 있었다. 한국 유학생도 아주 모처럼 좋은 음악을 만나자 아 베토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말에 독일 친구가 깜짝 놀라 반색하며 어떻게 베토벤을 아느냐?!”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는 급전해서 그가 동료 독일학생에게 한국유학생을 데려 가선 베토벤을 아는 사람!”이란 앞소리와 함께 열심히 소개해 주었다(이성낙, “베토벤이라는 날개를 달고”, <자유칼럼>, 2013. 2.22).

    그런 베토벤이었지만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라인강변 사투리 독일어를 말하는 촌닭으로 키는 작고 몸은 뚱뚱했다. 성품은 고집스럽고, 무례하고, 거만하고, 감정기복이 심했다.

    평생에 마음에 품었던 여인은 여럿이었지만 아무에게서도 사랑을 얻지 못했다. <월광>소나타 헌정의 귀차르디(G. Guicciardi, 1782-1856)도 귀족 딸이라 피아노 선생이란 하찮은 신분이 뛰어 넘을 수 없었던 저 넘어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불멸의 여인이라 후대가 이름 했음은 총각귀신에게 영혼결혼식이라도 올려주려는 배려이었을까.

    무엇보다 어려웠던 신변사항은 서른 즈음부터 난청이 시작되어 마흔아홉에 청각을 완전히 상실했음이었다. 청각 장애로 말미암아 정서장애가 심했다. 고립감으로 대인관계가 점차 폐쇄적이 되었고 때로 감정이 폭발하는 식이었다.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뛰어넘는 작품들은 혁명적이면서도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강력하고 심오하고 신비했다. 1960년대 중반 뉴욕 필하모닉의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영원하리 베토벤편에서 지휘자 레나드 번스타인은 베토벤이야말로 사람에게 내재한 신성(神性)을 일깨워 우주를 강타하게 만든 음악이라 격찬했다.

 

불편을 넘은 인간승리

    탄생 250년은 사람 생애주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기념인 “50년 금경축(金慶祝)”을 다섯 번이나 쌓은 경년(慶年)이다. 당연히 서울 음악계의 각급 조직이 나름의 축하음악회를 가질 것이겠는데, 해마다 5월에 국제적 규모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페스티벌이 우선 먼저 나섰다. 그 제152020년 음악제의 2주간 행사를 베토벤 탄생을 기려 환희의 송가라 이름 붙였다.

    공연 포스터 그림은 특별히 박대성(朴大成, 1945- ) 화백이 그려주었다. 페스티벌 출범 때 일조한 인연의 연장으로 포스터 그림은 화단 사람들과 좀 통한다는 개인이력 때문에 해매다 내가 기존 그림에서 골라왔다가 이번은 특별히 박 화백에게 조르고 조른 것은 그도 신체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주인공이란 사실에 착안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장애가 공교롭게도 각자의 예술활동에 치명적인 부위였다. 음악가에겐 귀가 들리지 않았음이었고, 화가에겐 운필(運筆)의 균형감에 큰 차질인 한쪽 손목의 잃었음이었다. 스스로 불편당(不便堂)‘이라 아호를 갖기까지의 연유는 들을 때마다 참혹해서 내 스스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바라 그의 반세기 화업(畫業) 축하 선집(<묵향 반세기: 박대성 화가와 함께>, 2016)에 어느 기고 글을 인용한다.

 

1948년 어느 날, 운문산(경북 청도)에 남아있던 빨치산들이 동네로 내려왔다. 그들은 어린 박대성을 업고 있는 부친을 칼로 내려치는 바람에 부친은 돌아가시고, 어린 박대성은 왼팔을 잃고 말았다.

 

    신체장애는 박대성의 성장과정을 참으로 어
렵게 만들었다
. 학교에 가도 동무들이 하도 놀리는 바람에 중학을 겨우 마치는 둥 만 둥 했다. 이후 그의 모든 공부는 길거리를 오간 동냥공부였다. 해도 열의는 하늘을 찌를 듯해서 우리 현대화단의 동양화, 전각, 조각 등 각계 대가에게 두루 배움을 얻었다. 길거리 공부는 뉴욕까지 뻗혔다. 영어가 장벽 아니었느냐 하자 거기도 벙어리가 살고 있더라.”고 태연하게 답했다. 베토벤은 아내의 고전음악 사랑을 통해 귀동냥했다는 역시 의연한 반응이었다.

    그의 화풍은 한마디로 자유스럽다. 극세필로 핍진하게 다가간 구상계열 세밀화(細密畵) 또는 글씨인가 하면, 정반대로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주체적으로 조감한 비구상화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필력이다. 지난 가을 당신의 예술세계를 현창하는 경주 보문단지 소재 박대성기념 솔거미술관의 개인전에 가서 안동 하회탈춤 가면을 그린 그림을 나는 아주 좋게 감상한 적 있었다. 이 연장으로 내가 지난 초여름 비엔나의 거처 하나를 꾸민 베토벤 기념관에서 사진 찍어왔던, 생전 얼굴을 떠서 만든 라이브 마스크를 불편당의 장기 하나인 수묵화로 그려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완성된 작품은 힌참 바라보니 당신의 자화상(2003)을 닮아 있었다. 얼굴의 왼쪽 눈을 여백(餘白)으로 비어두고 있음에서 당신 왼팔의 불편을 말함이라 싶었다. 베토벤 얼굴을 옮긴 수묵화도 왼쪽 눈을 더 아래로 처지게 그리고 더 어둡게 그려놓았다.

    서울스프링페스티벌의 주제인 환희의 송가는 합창교향곡의 별칭이다송가의 키워드는 , 친구, 이런 것 말고,/ 다른 소리, 더 좋은 노래/ 부르세, 더 기쁜 노래를!”이다.

    세밑은 온통 절망적인 정국 소식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럼에도 밤 길이의 극점인 동지가 지나면 낮 길이가 늘어나듯 밑바닥 시국이 반전되어 새해에  더 기쁜 노래를듣기 바라는 모두의 마음은 하나같이 정당하고 아름답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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