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0(월)구십이자술 25(나의 대학 시절 친구)

 

나의 대학시절 친구

     일제 말에는 상급학교에서 이공계통의 신입생만 모집하였지 인문계는 사실상 지원할 학교도 없었다. 그래서 일제하에 국민학교 선생이 되어 평원군 영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해방을 맞아 평양으로 돌아왔을 때 소련군 휘하에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나이 김성주가 이름을 바꾸어 나타나 평양을 공산국가의 수도로 만들어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다.

     북의 주민들은 모두 자유를 잃고 김일성 독재정권에 굴복해야만 했다. 용단을 내려 어머님만을 모시고 평양에서 기차를 타고 철원을 거쳐 연천을 지나 의정부를 통과하고 명륜동에 사시던 작은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내 나이 열아홉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연희전문이 대학으로 승격하여 학생모집을 하는데 예상 밖으로 많은 젊은 사람들이 그 학교를 지망하였다. 피난 오면서 중학교 졸업장도 들고 오지 못한 나를 연희대학 전문부에 입학하도록 배려해 준 것은 백낙준 총장이었다.

     가까스로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대학본부에는 강의실이 부족하여 한때 초등학교가 있던 치원관에서 대학교육을 받기 시작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도 여러 해 대학에 가지 못하고 사회에서 활동하던 나이 든 친구들도 많이 모였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어쩌면 극작가 차범석일 것이다. 그 당시 이미 자기가 쓴 단편 하나를 강의실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수준이 대단하였다. 미국 가서 교수가 된 송석중, 스웨덴 대사를 지낸 임명진, 그리고 이화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한평생 강의한 이근섭 등이 문과에 다 모여 들었다. 본과 1학년에 진학하여 만난 친구들은 외무부차관을 지낸 전상진, 학생시절에 벌써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뒤에 유명한 검사가 된 이병용 등이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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