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1(월) 구십이자술 15 (누님 생각 8)

 

누님 생각 8

     누님이 정년도 되기 전에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자리를 내놓고 문경 새재 기슭에 집 한 채를 지어 그곳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던 그 무렵 나도 교단에서 밀려나 누님을 모시고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누님은 바쁘게 살았고 나는 나대로 권력에 시달리면서 분주히 지내던 그런 생활을 접고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를 읊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남매는 우리들 자신의 실력보다도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왔어”.  진지한 한마디였다. 인간 김옥길도 자기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고 나 또한 따지고 보면 박정희가 만든 중앙정보부와 그가 무리하게 선포한 유신헌법 그리고 유신체제 때문에 허명을 날리게 된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실력보다 높이 평가된다라는 누님의 준엄한 선고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누님이 내 가까이 있어서 나의 오늘이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생을 90년 넘게 살면서 내가 점령한 나지막한 고지 하나는 저 잘난 맛에 살지 않는다라는 고지 아닌 고지이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그런 누님이 부끄러워하는 동생이 되지 않기 위하여 나도 다소간에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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