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7) 안병욱

 

 

안병욱은 평안남도 용강 사람인데 나보다는 8년 선배로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전공하였다. 안병욱과 더불어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독서계를 석권했던 또한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그가 김형석이다. 이 두 사람의 철학자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특이한 존재들이어서 어느 대학에 다니건 이들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김형석의 말이나 글에는 낭만이 넘쳤고 안병욱의 말과 글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도덕적 교훈이 스며 있었다. 두 사람의 말투에는 약간의 평안도 사투리가 남아 있었지만 교양으로 잘 다듬어진 이들의 말에는 흠잡을 데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강원도 양구에는 안병욱과 김형석을 기념하는 철학의 집도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안병욱은 양구군 청춘공원 시와 철학의 집 동산에 묻혔는데, 그의 영결식에서 친구이자 동지이던 김형석은 나도 안병욱교수 옆에 묻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한마디 하였다니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안병욱은 철두철미 정의파 였지만 현실의 권력에 대항하여 맞붙어 싸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안병욱은 대한민국을 끔찍이 사랑했고 그래서 안중근과 안창호의 사상의 전도사로 한 평생 살았지만 군사정권과 맞붙어 싸우다가 감옥에 가는 일은 없었다. 그는 자기 식으로 싸우고, 자기 대로의 만족감을 간직하고 굽힘없는 한평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우리나라 지성 사회의 거물이 된 것은 1958 사상계의 주필로 취임했을 때부터였다. 장준하가 창간한 이 잡지는 그 시대의 지성인들을 총망라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발간되는 사상계가 매달 10만부 이상 판매되던 때, 이 잡지에 대항할 지성지는 하나도 없었다. 이승만의 자유당을 이겨낸 사상계였지만 박정희 군사정권과 맞붙어 싸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장준하는 그 유명하던 잡지를 부완혁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는데 바로 그 시기에 사상계에 시인 김지하의 오적이 발표되는 바람에 부완혁과 김지하는 함께 구치소에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나선 장준하도 부완혁도 본디 가졌던 활기를 되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안병욱을 비롯한 사상계파 지식인들은 살아남아 꺼져가는 민주주의의 등불에 심지를 돋군 것도 사실이다. 박종홍, 김태길, 조가경, 안병무등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유수한 철학자들을 깊이 사귀지는 못하였으나 여러 번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도 잘 기억한다. 우리나라의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철학자다운 면모를 가진 이는 편견일지는 모르지만 안병욱 오직 한 사람뿐이다. 안병욱의 얼굴스케일은 다른 철학자들 보다 더 큰 편이었고 그 얼굴 전체가 복잡하긴 했지만 조화를 이루어서 잘 그려진 한 폭의 초상화였다.

 

그는 도산 안창호라는 도산의 전기를 일백만권은 국민 사이에 보급시켜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산의 그 전기를 구독할 것을 권하였다. 쉬운 문체로 전개되는 매우 읽기가 수월한 책이지만 진정 도산을 사모하는 애국지사의 글이라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저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지만 일설에는 그 책이 이광수의 작품이라는 말도 나돌았는데 나는 속으로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춘원이 6.25 사변 중에 납치되어 그의 생사를 아는 이가 없지만 춘원이 어디선가 털어놓을 한 마디 때문에 그 책의 저자가 이광수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춘원이 상해 임시 정부를 찾아갔던 것은 비록 그가 투사는 아니었지만 광복을 위해 자기가 할 만한 일이 없을까 생각하여 상해로 갔던 것이다. 거기서 도산 안창호를 만나 이런 말을 던졌다는 것이다. “도산 선생, 저도 독립운동을 하고 싶은데 그 자질이 안 되는 것 같아 선생께 제 고충을 이야기 합니다. 저는 유난히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인물이 과연 독립운동에 가담할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을 받고 도산은 즉각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그러나 절대로 곁눈질해서 여자를 보지는 마세요. 당당히 보다가 그 여자에게 빰을 맞는 한이 있어도 여자를 힐끔힐끔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춘원은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도산은 도학자 같은 인물이어서 그런 사람이 어떻게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수 있겠습니까.”라며 자기를 타이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곁눈질하며 여자를 보는 것이 잘못이라는 안창호의 뜻을 알아차리고 역시 도산은 위대한 인물이라고 춘원은 그를 우러러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병욱은 도산의 그런 정신자세를 흠모하는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당 안병욱의 평생 목표는 이 백성이 세계 일등 국민이 되는 것이었고 그의 철학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타당하다고 믿는다. 언젠가 나에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어떤 지인이 빈소에 갔더니 그의 저서가 오직 두 권이 놓여 있는데 너무 빈약해 보이더라고 하면서 자기 키높이 만큼은 저서를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안병욱이 평생에 쓴 책을 쌓아놓으면 50~60권는 된다고 들었는데 그의 키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 책에 높이를 다 합치면 1m 80은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병욱은 멋있는 사나이, 의미심장한 철학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을 떠날 적에 그의 나이는 93세였다. 삶을 의미있게 즐기면서 그는 깨끗하게 한 평생을 살았다.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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