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96) 문창모

 

 

내가 문창모라는 이 시대의 특이한 인물을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 동대문 가까이 자리 잡은 이화대학병원 옆에 대한감리교회에 속한 동대문교회가 있었다. 어느 날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이근섭과 함께 그 동대문 교회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대표기도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 온 문창모를 보았다. 자그마한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에 별로 뛰어난 것 없는 평범한 사람 같았지만 일단 입을 열어 기도를 시작하니 그의 입에서 기도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그 기도 소리는 신앙의 힘이 넘쳤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것을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대표 기도를 한 저 어른이 누구인지 내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 친구는 기도한 그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저 사람이 세브란스 출신 의사인데 감리교회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거물이다라고 하였다.

 

문창모는 평안북도 선천 사람이다. 1907년생이니 나보다 21년 위인데 나와는 동갑인 딸이 한 사람이 있어서 나에게 있어 아버님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부산 피난 시절에도 여러 차례 만났고 그가 한때는 세브란스병원장을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쨌건 감리교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두드러진 인물이었는데 그는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입학하여 의사면허를 받았고 일제하에서는 해주구세병원 의사 그리고 평양 기독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를 거쳐 감리교총회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감리교회를 일본교회에 예속시키려는 총독부 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하여 항일투사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그런 독립정신 때문에 배재학교 학생시절에 6.10만세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투옥되기도 하였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 배제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에 진학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1956년 내가 유학하고 있던 인디아나의 에반스빌대학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학교를 방문한 감리교 신학교의 홍현설목사와 야성 문창모는 하이드 총장의 안내를 받아 내가 다니던 학교를 방문했는데 총장이 나도 청하여 총장공관에서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아닌 사건을 문창모는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현대 정주영이 정당을 하나 시작하면서 문창모를 전국구 1번으로 추대하면서 부터다.

 

14대 국회는 1992년에 시작되었는데 그는 85세의 고령으로 당선이 되어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국회가 개원 되는 날 최고연령자가 의장이 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문창모는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한국 국회의장이 되어 의사봉을 잡기도 하였다. 눈언저리에 언제나 장난기가 감돌던 문창모는 내가 이래봬도 우리나라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야라고 큰소리를 치기도하였다.

 

정주영 덕에 나는 그 당에 최고위원이 되긴 했지만 그는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기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정계를 떠났고 나는 당대표가 되어 재미없는 의원생활을 4년 하고 마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같은 문창모의원은 국회에서 나를 만나면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표님이라고 인사하여 주변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결핵협회를 만들어 맹활약을 하였고 요새는 중단된 크리스마스 씰의 처음 만들어 결핵환자를 돕기에 앞장을 섰던 참으로 유능한 의료 사업가이기도하였다. 문창모의 병원은 원주에 있어서 새벽에 환자들을 보고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곤 하였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환자들을 보았고 그를 명의로 알고 원근 각처에서 모여든 환자들을 새벽마다 돌보던 인술의 의사이기도 했다. 원주 기독병원도 그가 없었으면 설립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나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없고 명예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언제나 겸허한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기를 원했다. 나도 이젠 90넘은 노인이 되었지만 문창모가 국회의장이 되어 85세 나이에 의사봉을 두들기고 있었을 때 우리 주변에는 그렇게 오래 사는 인물이 흔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가 95세로 마침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믿음이란 매우 위대한 힘을 가진 능력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나도 그렇게 느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위대한 인물을 가까이 모실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영광이 아닌가! 그가 경영하던 병원도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오직 원주기독병원에 그의 동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를 흠모하던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다 떠나서 그를 존경하던 사람도 몇 남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그를 사모하는 몇 사람의 가슴속에는 야성 문창모는 오늘도 위대한 인간이고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다. 날로 가을이 깊어만 가는 오늘, 나는 야성 문창모를 그리워하며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읊은 한하운의 시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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