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80)현승종

 

 

우리나라의 24대 국무총리를 지낸 현승종은 평안남도 개천 사람이다. 평양고보 출신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중에 한 분이다. 내가 한때 조그만 야당의 국회의원 노릇을 하던 때, 현 선배는 국무총리였다. 현총리가 국회에 출석 할 때마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야당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원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나가 현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나는 여당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두드러진 교육가요,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현승종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민남규라는 사업가는 고려대학 출신이다. 그는 자기가 결혼할 때 은사이던 현승종에게 주례를 부탁한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하면서 해마다 꼭 한번 주례를 맡아준 그 은사를 찾아가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현승종은 민남규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시대에 가장 주례를 부탁하고 싶은 분이 누군가라고 물으면, 고려 대학 출신이 아니더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현승종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싶었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는 진정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어른이었다.

 

그는 1919126일에 출생하였다. 그렇다면 올해 만 100세가 된 것이다. 요새 난 바깥출입이 뜸하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 그 어른이 나타나는 때는 없다. 평고를 졸업한 그는 곧 경성제국대학 법과에 입학 하였는데 당시에는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경성대를 지망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경성제대를 졸업하면 출세의 길이 잘 열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뒤에 해방의 날이 찾아왔다. 그는 일본군에 징발되어 일본 군대에서 근무 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1946년부터 30년 가까이 고려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기간 중에도 군대에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여 한 바 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자진하여 한국전쟁에 뛰어들었고 195210월에는 공군 소령으로 진급하기도 했다. 그의 삶에 어느 때나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이 지극해서 만난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현승종은 고려대학에 적을 둔 30년 가까운 세월 중에 교양학부장, 법률행정 연구소장 그리고 중앙 도서관장직을 맡았다. 그 뒤에 유네스코 한국위원도 지냈고 고려대 독일문화 연구소장 자리도 맡았었는데 1974년 성균관대학 총장으로 초빙되어 고려대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80년에는 헌법개정 심의위원에 임명되었고 85년에는 민족통일 중앙협의회 회장으로 추대 되기도 하였다.

 

성균관 대학 총장 일을 6년 보고 나서 그는 다시 1984년부터 한림대학교수, 동 대학에서 학장, 총장을 역임하였다. 신설된 한림대학이 춘천에 자리잡고 있어서 유능한 교수들을 모시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현승종의 뒤를 이어 그 멀고 먼 춘천까지 출퇴근하고 우수한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덕망이 높던 현승종은 다른 교수들에게도 존경받는 인물이어서 한때 한림대학교의 명성은 자자하였다.

 

고려대학교 재임 중 그는 그 대학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3년 뒤에는 타이완 정치 대학교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승종은 학계와 교육계에서 그 공로를 인정 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충무무공 훈장, 성곡학술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교과서처럼 학생들이 많이 읽던 그의 저서 로마법 개론, 로마법 원론, 법사상사, 서양법제사등은 학생들 사이에서 명저로 여겨졌다. 그의 아호는 춘재였고, 그의 성품은 선비다워 그의 얼굴과 몸가짐에는 그런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요새는 거의 만날 일이 없는 현선배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댁으로 방문하여 후배가 선배를 대하는 예의를 갖추고자 금일봉을 드렸더니 그는 이렇게 나를 타일렀다 김선생, 나를 방문해 주는 것은 백번 고마운데 이렇게 봉투를 놓고 가면 나는 마음이 괴로워요. 내가 노후를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으니 아예 이런 일을 하지 마세요.그의 말과 표정이 하도 공손하였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었다.

 

그러나 현선배의 건강도 점점 나빠지고 사모님을 잃은 뒤에는 더 몸이 허약해 졌으니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모든 유명인사들은 나이가 많아 은퇴하고 나면 그 이름도 차차 잊혀지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현선배를 생각하면 나는 백세청풍이라는 아름다운 글귀를 되새기게 된다. 확실히 현선배는 우리들에게 맑은 바람이 되어 우리들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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