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8)이영덕

 

이영덕

이영덕과 나는 일제하인 1945년 평양고보를 같은 해 졸업하였지만 그는 나보다 한 반 위에 있었고 돌연 학제가 변경되어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영덕처럼 교육계와 교육학계와 교육행정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였고 대학원을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뒤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한국적십자총재, (한국 측 수석대표), 한국교육개발원 창설, 그 개발원의 초대원장, 한국교육학회 회장, 한국교원총연합회 회장, 통일원장관 그리고 대한민국 제27대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는 기독교에 바탕한 민주 교육의 후계자로 백낙준, 김활란, 오천석등의 뒤를 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 관한 유명한 책들도 여러권 남겼는데 한국의 교육 혁신, 더 나은 교육의 탐구등은 앞으로도 이 나라 민주 교육의 지침서가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국권을 회복한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을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고 믿고 그는 교육을 통한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의 과제들을 매우 극명하게 그 청사진을 민족앞에 제시하였다. 특히 한국 교육의 현대화라는 저술은 그런 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씽크탱크로서 한국교육개발원을 설립한 것이었다. 그가 한국 적십자사 총재로 취임하고 나서 재임 중에 남북 적십자회담 대표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던 일도 있다. 그런 공로가 인정되어 아마도 그는 국무총리로 발탁되었을 것이다. 이영덕과의 깊은 인연은 우리가 함께 일제하에 평고보의 선후배라는 사실 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인연이 있어서 평생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영덕의 부인 정확실의 어머니 김영성 권사를 모시고 나는 나의 어머니 방신근 권사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38선을 넘어 월남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19466월 중순에 일이었는데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논두렁 길을 따라 삼팔선의 접한 논에서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요란 하였던 것도 기억한다. 그 때 정확실은 평양 서문고녀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모습이 신변보호의 도움이 되리라고 그의 어머님은 판단하였던 것 같다. 우리 일행은 같은 월남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 경기도 연천을 지나 미국 헌병들이 관리하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DDT 세례를 한바탕 받아야 했는데 그러고 나서야 공산 독재의 땅을 벗어나 자유의 땅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두 집 가족은 일제 하에 서울 화신상에서 근무하기 위하여 서울에 정착했던 삼촌댁을 찾아가 며칠 동안 한 집에 살았고 김영성권사와 그의 따님은 친척집을 찾아 떠나 갔고 나는 어머님을 모시고 명륜동 그 집에 여러 날 더 묵다가 우리도 셋집을 얻어 이사를 갔다. 같은 때 대학에 입학 했는데 나는 연희 대학에, 정확실은 이화 대학에 들어가 또다시 가까운 이웃으로 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정확실이 이영덕이 창설한 한국개발원에 취직하여 하빈저라는 여성 고문관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하여 다른 사람을 보다도 일찍이 미국 유학 길에 올라서 한동안 이영덕을 통해서 정확실의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38선을 넘던 그 날 밤, 어두운 밤하늘과 끊임없이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도 생생히 기억이 되는데 벌써 73년의 오래 세월이 덧없이 흘러 간 것 아닌가! 이영덕과 결혼 한 정확실은 아들, 딸을 낳아서 잘 키웠다고 들었다. 정확실도 집안 살림만 하지 않고 이화 대학에서 여러 해 가르쳤고 뒤에는 사범대학에 속해있던 부속초등학교의 교장으로 여러 해 봉직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정확실이 빌려주어서 읽은 로맹롤랑내면의 여로라는 수상집이 있었는데 일본 말로 번역된 그 책이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몇 년 전에 보스턴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시무하는 목사가 서울에 와서 옛날 보스턴 교회 교인들을 연세대 알렌관으로 초청하여 저녁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 목사의 옆자리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영덕 총리가 그 목사의 장인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목사님 부인 이름이 성혜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제 아내의 이름도 기억하십니까!”라고 목사가 내게 되물었다. 그 뿐이 아니다. 옛날 아득한 옛날 정확실이 나에게 가르쳐 준 영어 노래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How Can I Leave Thee!

How can I leave thee!

How can I from thee part!

That thou hast all my heart,

Sister, believe;

Thou hast this soul of mine,

So closely bound to thine,

No other can I love,

Save thee alone.

 

〈나 어찌 그대 곁을 떠날 수 있나!

나 어찌 그대 곁을 떠날 수 있나!

나 어찌 그대와 헤어질 수 있나!

내 사랑을 그대가 차지했으니

사랑하는 누나여, 믿어주소서

내 영혼을 그대가 차지했으니  

내 영혼은 그대에게 얽혀 있다오

나 다른 사람 사랑할 수 없어요

그대 말고 누구를 내가 사랑하리까

오로지 그대만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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