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4) 이은상

 

 

이은상의 아호는 노산이다. 노산에 대해 백년의 인물들에서 거론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가 하도 좋아하는 선배 문인이라 쓰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그에 대하여 쓰기를 주저한 까닭이 있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 교수 고려대의 김성식이 뒤에는 경희대학으로 옮겨갔지만  그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의 존경할 만한 서양사학자였다. 김성식은 본관이 풍천인 현존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명사였고, 나는 그를 큰 형님처럼 모시고 살았는데 한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노산은 사람도 아니야, 가장 절친한 친구의 아내를 뺏어서 만주로 도망을 갔다는데 내 눈에는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아.영국의 올리버 크롬웰 못지않은 청교도이던 선비 김성식의 눈에는 노산이 한심한 인간으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노산 이은상을 이 시대에 매우 뛰어난 문인 천재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산의 한 가지 과오는 나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런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천하의 천재를 매장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노산은 190310월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라고 노래 했을 때 그는 어렸을 적에 자기를 키워준 마산의 앞바다를 생각하고 그 시를 읊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설립한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연희 전문에 입학하여 큰 꿈을 키웠지만 졸업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옛날에 남대문교회를 담임했던 김치선 목사가 그와 한 반이었다고 하면서 노산이 피를 토하면서 시를 줄줄 암송 하던 그 사실을 나에게 일러 주었다. “그 사람은 천재였습니다.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고 암송하는 한시가 부지기수였습니다.같은 반의 친구였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큰 키도 아니어서 자그마한 체구의 얼굴은 나이가 들었어도 동안이었다. 우리집에 저녁을 들기 위해 왔을 때, 그때도 적벽가를 비롯한 한시를 줄줄 외고 있어서 그와 둘러앉은 무식한 우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 창신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서 공부하였다. 이 학교에서도 졸업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다. 그는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이듬해 1943년 석방 되었는데 그 뒤에 또 다시 평양 경찰서에 구금되었지만 해방으로 풀려 나왔다. 그는 일찍이 호남신문사 사장직을 맡아 경영 보다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였다. 1950년 이후에는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약하였고, 일찍이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9년부터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사업의 책임을 맡았고 안중근의사 숭모회의 책임자 이기도하였다. 1974년 연세대학교는 그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였고 1978년에는 예술원 종신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마산 사람들은 마산이 낳은 한국 최고의 문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마산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하여 나도 한번 거기에 초대받아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노산이 한국 시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이다. 1930년부터는 가람 이병기와 손을 잡고 시조문학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할미꽃, 봄처녀등 모두 일제 때 출간되었으며 고향 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등은 작곡이 되어 오늘도 많은 한국인들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1960년대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대통령상을 받았고 70년대에는 5.16민족상 수상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 집 앞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서 서 있습니다

 

오늘도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을

외로이 이 집 앞을 지나는 마음

잊으려 옛날 일을 잊어버리려

불빛에 빗줄기를 세며 갑니다

 

아마도 이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 집 앞이라는 노래 제목이 우리가 매우 젊었던 시절, 아련한 옛날들을 회상케 한다. 돌아오지 못할 날들인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노산과 함께 그 옛날 일들을 그리워한다. 이 노래는 현재명이 작곡하였다. 비슷한 시대를 함께 산 노산과 현재명은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었을 것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또 하나 있는데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 생각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여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소리 없이 오는 눈발 사이로

밤에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밤에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 같은 내 동무여

네가 내게서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 노래 시인과 작곡자는 처남 매부 사이는 아니었어도 어지간히 가까운 사돈이었다. 한 시대의 멋쟁이 노산 그리고 한 시대의 가장 소박했던 작곡자이자 지휘자였던 박태준, 오늘 따라 이 두 사람이 무척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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