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6(목) 이승만의 꿈 (381)

 

이승만의 꿈

언젠가 배재학교 졸업생들의 모임에 참석하였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배재의 졸업생들인 제군은 이렇다 할 큰일을 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말라. 배재학교의 4회 졸업생 이승만이 오천년 역사에 처음으로 이 땅에서 공화 정치를 시작하였으니 얼마나 대견하고 장한 일인가.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하였을 때 졸업생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하였다. 그 말은 나의 진담이었지 농담이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이승만은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이승만은 공화국의 아버지로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승만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서 통치자를 직접 뽑은 민주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1894년 배재 학당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신학문과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고 특히 자유, 평등, 인권 등의 서양 혁명 사상과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재필을 만나 독립 협회에 가입하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며 민주 계몽에 앞장섰던 젊은이로서, 구한국 말에 이미 6년의 옥고를 치룬바 있다. 민주주의가 독립의 길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는 민영환의 주선으로 도미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났고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귀국하여 YMCA를 중심으로 청년 운동을 전개하였고 1917년 하와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 정부에 관여하기도 했다. 3.15 부정선거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오늘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지 회복의 꿈은 여전히 살아 있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틀림없이 자유민주주의로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었을 것이다. ! 슬프다! 조국의 오늘이여!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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