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71) 함태호

 

 

 

 1930년 태어난 원산 사람 함태호가 60년대 말 풍림상사를 창업하고 식품산업에 첫발을 내대였을 때 그는 아직 업계에 풋내기였고 자본이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말 못할 고생을 하였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이화여대 의과대학의 교수이며 부속 동대문 병원의 원장이던 박이갑의 여동생이 그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함태호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고함태호와 그의 부인은 매우 매력적인 사람들이였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가 되어 같은 시대를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늘 오뚜기식품은 한국에서만 유명한 식품회사가 아니라 널리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업체라는 사실에 나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함태호를 한 번 만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얼마나 알차고 단단한 사람인지를 안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가진 결함은 무슨 일이나 시작한 일이 빨리빨리 큰 성공을 거두기 바라는 것이다식당에 가서 메뉴를 잘 들여다보지도 않고 빨리 되는 것이 어느 것이냐고 웨이터에게 묻는 경우가 많이 있는 줄 내가 안다. 5천년 역사에 처음 민주공화국을 세우고도 이 겨레의 병은 여전하여 이 공화국을 빨리빨리 세계에서 제일가는 공화국이 되게 하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서두르는 가운데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못하고 내실을 기하지 않은 탓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중병에 걸린 환자나 다름없다기초 공사가 전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모래 위에 세운 으리으리한 집이었다고 해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 나라에서 오뚜기사장 함태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돌다리도 두들겨 보면서 가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런 기질의 사나이가 그 사람이었다식품의 기준을 판단하는 세계적인 기구들이 있다어떤 식품회사나 그들의 제품이 ISO HACCP같은 식품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아 보려고 서두르고 애를 쓰는 것이 사실이지만 함태호는 다르다그는 오뚜기의 일꾼들을 모아 놓고 그런 국제기구들의 인증을 받는 일에 주력하지 말고 먼저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식품을 만드는 일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주 금요일 시식회에 직접 참석하여 자기 자신이 우선 맛을 보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테스트를 하게하고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는 해외 출장을 나가지 않는 한, 평생 틀림없이 그 모임에 참석하여 맛을 보았을 뿐 아니라 각자 자기 가족식구들에게 권할 수 있는 식품만을 만들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이어서 혁신적인 마케팅 기법인 시식 판매 및 판매 여사원 제도는 역시 함태호에 뛰어난 아이디어였다.

 

 기업이 크게 성장하여 함태호는 회장 자리에 앉았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벌어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는 장학 사업과 학술 연구 지원도 정성을 다하여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고, 2016년까지 이미 687명의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오뚜기 학술상도 매년 시상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그뿐 아니라 심장병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여 4242명의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함태호는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내가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그를 청하였을 때도 그는 거절하고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미리 밑에 거느린 채 연수에 연수를 거듭하게 한 함영준에게 오뚜기 총수 자리를 물려주고 그는 뒷자리 앉았다상장된 오뚜기의 주식이 날마다 껑충껑충 뛰어 올라 오뚜기의 주를 샀던 사람들은 큰돈을 벌게 되었다.

 

 그는 약속한 대로 자기가 가졌던 주식 3만주를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하였는데 당시에 이미 300억 원이 넘는 큰돈이었다그가 2016년 세상을 떠나고 나는 그에 영결식에도 참석했고 1년 뒤에 추모 예배에도 나갔었는데 그의 아들에게 내가 물었다. “함회장은 늘 우리에게 자기가 가진 돈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는데라고 옛날을 추억하며 한 마디 했더니그의 아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식은 다 사회에 환원 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통장의 잔고는 ‘0’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업가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기독교인이요 모범적인 시민이어서 그의 얼굴이 떠오르면 그리움과 더불어 밝은 미소가 또한 떠오른다그는 깨끗하게 열심히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거기서 그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찾아서 하고 있을 것이다비록 천국이지만 할 일은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차돌같이 단단하던 사람허튼 일은 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랑스러운 사나이엷은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그가 무척 그리워진다나도 며칠 후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그를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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