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61) 강성갑

 

 

 

 나는 1970년대 어떤 사람이기에라는 제목으로 동서의 위인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웅호걸들의 일생을 더듬어본 적이 있다. 그 책자에는 마틴 루터, 크롬웰, 간디 같은 위인들을 삶이 짧게 묘사되어 있다. 한국 사람도 그 중에 세분이 끼어있는데 이순신과 이상재, 그리고 내가 오늘도 흠모하는 언제나 그리운 사람, 강성갑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다.

 

  강성갑은 1912년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상고를 졸업하고 한때 지방의 금융조합에서 일을 한 적이 있지만 뜻하는 바 있어 상경하여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여 한글학자 최현배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밤잠을 안자고 영어를 공부하였다고 나에게 말한 적 있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그는 곧 일본에 유학을 가서 동지사대학 신학부에 입학했다. 아마도 그는 그리스도 복음의 전도자가 되기를 희망 했던 것 같다. 내가 대학 3학년 되었을 때 목사 강성갑은 학교 채플시간에 강사로 모교를 찾아왔다. 그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학생들에게 일러 주었다. 단 위에 섰던 강성갑의 그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그마한 키에 단정한 생김새 였지만 그의 두 눈에서는 불이 나는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30대의 다부진 사나이였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비음이 섞여있어 상냥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힘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 사나이가 풍기는 강한 매력에 휩쓸려 그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는 농촌에서 일을 시작해야 장차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겨울방학이 되어 기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강성갑이 시작한 학교가 있는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을 찾아 갔다. 거기에 한얼중학교라는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 건물이나 환경은 몹시 초라했지만 이 학교의 설립의 위대한 정신은 한반도 전체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신학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돌아와 교회를 섬기다가 8.15 해방을 맞아 한때는 부산대학의 독일어 교수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성갑에게 있어서 대학 교수라는 직업은 아마도 따분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살리는 길이 농촌 부흥에 있고 농촌의 부흥은 고등교육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중등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으므로 그는 대학을 그만 두고 김해 진영에 중학교를 설립 하였던 것이다. 그는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산을 다 팔아 별다른 연고도 없는 진영에서 중등교육을 실시하여 그 운동이 전국에 퍼져 나가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농촌의 자녀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천막을 지어 일을 시작했고 얼마 뒤에는 학생과 교직원이 힘을 합하여 흙벽돌을 만들었고 그들의 손으로 교실을 짓기 시작하였다. 비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몰아쳐 세 번이나 벽이 무너졌지만 용기백배하여 드디어 집을 짓고 교실을 만들었다.

 

  1949년 겨울 방학을 맞아 나와 함께 한얼중학교를 찾은 친구들은 연대영문과 이근섭, 장로교신학교의 맹의순, 이규호 그리고 이화여대에서 한 두 학생이 같이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혁신적으로 세워진 이 학교에는 교장과 교직원들의 월급 액수가 같고 미장이, 목수에게도 같은 선생 자격을 주어서 똑같은 대우를 받게 했다. 초기에는 취사도 한 곳에서 하여서 밥과 국을 집집마다 받아다 먹는 철저한 평등 사상으로 일관하여 뒤에 강성갑은 빨갱이로 몰려 그런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을 데리고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감나무 묘목을 심어 주었다. 농가의 주인들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무엇을 바라면서 이런 일을 합니까라고 물었지만 강성갑은 농촌이 잘 사는 것을 바라는 진심 하나 밖에는 없었다. 그는 점자 그 지역에서 힘을 얻어 그의 한 마디가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고 그런 사실이 이른바 지방 유지들에게 미움을 산 것도 사실이었다. 겨울방학 때 한얼중학교를 찾아갔던 학생들은 한 달 남짓 가르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교장은 돈이 두둑하게 든 봉투를 우리들에게 건네주면서 학비에 보태 쓰라고 하였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한얼중학교에 가서 가르치리라 마음을 먹고 그의 서재에서 우찌무라 간조가 쓴 로마서 강해라는 책을 한 권 빌려 가지고 돌아왔는데 나는 그 책을 돌려주지 못하고 6·25를 맞은 것이었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진영읍에 들어선 국군은 공산당에 관련되었다고 믿어지는 모든 주민을 구속하였고 그 중에 목사 강성갑, 한얼중학교 이사장 최갑시가 끼어 있었다. 잘못된 정보와 개인의 원한을 바탕으로 진영지서의 김 모 서장과 그 지역의 심보가 고약한 유지 몇 사람에 의하여 요시찰 인물이 300명 가까이 체포되어 수용되어 있었고 한얼중학교 교장과 이사장은 불순분자로 분류되어 낙동강 수산교 아래 모래사장에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이사장 최갑시는 다리에 총탄을 맞았지만 죽을힘을 다하여 낙동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 그가 살아남지 못하였다면 강성갑의 순교를 우리는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최갑시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강 목사님은 순교에 앞서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고 이 겨레를 가난과 재앙에서 건져주시고 한얼을 축복해 주시고 이 죄인 주님의 뜻을 받들어 당신의 품에 육신과 영혼을 맡깁니다연희전문 설립자 원두우 박사의 아들 원 한경은 그 소식을 듣고 연희가 낳은 가장 훌륭한 졸업생이 비명에 갔다고 탄식 했다는 것이고 그를 가르친 스승 백낙준과 최현배는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한 시대의 애국자이며 동시에 순교자인 강성갑을 따르고자 결심했던 나는 훌륭한 지도자를 잃고 92세가 되기까지 하는 일 없이 살고 또 살아 강성갑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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